[칼럼스크랩] 성인기에 받은 자폐 진단, 계속되는 이후의 삶
지난 2월 중순부터,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의 시간소모와 육체적 무리로 인한 며칠간의 몸살, 그리고 계속되는 생업으로 연재가 다소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점 우선 사과드리고 모두의 양해에 감사하며 이번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제목을 보고 재작년 여름 한 언론사에 올라온 필자의 글이 기억나실 분들도 어느 정도 계실 것이다. 일회성 투고를 포함한다면 정신적 장애에 대한 나의 첫 언론 투고면서 큰 행사에서의 발표문이었다. 미등록 자폐 당사자로서 나의 과거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루고, 나름대로 감정선과 디테일 둘 다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써가며 썼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 그런 마음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잘 썼었으니 이젠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자리에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다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 주신 분이 계셨다. 필자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후속편 격으로 한 차례 다뤄도 좋겠다 싶어 흔쾌히 수락하게 되었다.
주인공이 자폐당사자인 한 드라마가 유행하던 시절, 어느 미등록 자폐인이 투고한 자신의 이야기
재작년 여름의 그 글을 대략적인 내용만 요약한다면, 어릴 적 자신의 아이(글쓴이)가 ‘정상’이길 바랐을 부모님 마음에 의해 정신과 근처도 못 가봤지만, 글쓴이 스스로는 자신의 ‘자폐답게 여겨질’ 성향들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직감해왔다. 학창시절의 힘겨운 인간관계는 기본, 나중에 알아본 자폐인의 특성이 자신과 너무 많은 공통점이 있어 스스로는 이미 당사자성을 확신했다.
결국 성인기에 돈을 모아 대학병원 정신과 종합심리검사를 받고, 인생 첫 자폐 진단을 받고 자폐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해진 나는 자폐 당사자 자조모임들을 알아보게 된다. 그리고 자폐 당사자들에게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바란다고 전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나서, 미등록 자폐당사자의 삶에 관심을 갖고 해당 주제를 다루는 분들께 여러 차례 인용되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도 시기가 맞게 되어 자폐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잠시 높아졌었던 시기였다보니 인권이나 장애인 권익, 또는 복지 계열과 꽤 거리가 있는 사이트들에서도 스크랩 및 인용이 되어 잠시 주목을 받았다.
단 이것은 내 발표시기가 우연히 그렇게 맞아떨어졌을 뿐, 해당 드라마가 있기 이전인 2020년에도 미등록 자폐당사자에 대해 (글쓴이 자신의 인생사가 아니더라도) 다뤘던 다른 당사자 분들의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없던 사회적 문제가 드라마 때문에 생겨나거나 관심을 받게 된 건 아니라는 의미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 스스로는 ‘이 험한 세상에 내 개인정보와 개인사를 너무 털어낸 글 같다. 이게 널리 퍼지는 것은 써 놓고도 걱정이 된다.’는 본능적인 불안한 마음이 종종 들 때가 있었다.
덧글창을 쳐다보는 건 물론, 내가 내 글을 다시 보기도 두려웠다. 그렇지만 세상에 말하고 싶은 바가 당당히 있으니 내 장애 정체성에 있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당사자가 늘 되고 싶었다. 나와 같은 정신적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과 미래의 길에 대해서도 대담히 글을 쓰고 말할 초심을 꼭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정신적 장애를 ‘고백’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세월이 흘러 내가 첫 자폐 진단을 병원에서 받게 된 것도 햇수로 6년 전, 앞서 말한 언론 기사가 알려진 것은 2년 전이 되었다. 그간 살아오기 위해 다양한 일자리들을 거쳐왔다. 법적으로 장애인으로 인정되는 입장이 아니니 내 자폐성 장애와 정신장애 특성에 대해 이해를 기대하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결국 정신적 장애 특성들을 최대한 숨기며 일자리 구직에 나섰다. 기회가 주어지는 것부터 어려우니 사회적 기술 재활의 기회도 마땅치 않다는 식으로 불평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수입원이 필요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내 장애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 전과 후가 달라질 것은 없다.
여기서 장애를 숨긴다는 건 장애가 있어서 그로 인한 특성을 숨기는 기존에 더해 장애를 대외적으로 밝혔다는 것을 숨기는 것까지 새로 포함되어버린 것이었다. 허술한 대책으로나마 이력서의 이메일 주소 칸에 장애계 투고에 쓴 메일주소와는 다른 걸 쓰는 정도라도 했다. 이렇게 살기 위해 고백해놓은 장애를 살기 위해 숨기며 스스로의 기력을 소진시켜 왔다. 들키기라도 한다면 동명이인(同名異人;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특정짓기 너무 쉬운 건 당연하다.
다행이게도, 적어도 나는 내가 미등록 정신적 장애인인 것을 기업에서 탐색하기 쉬워진 문제로 바로 ‘사회적 사망선고’가 내려지지는 않았다. 즉 일을 구하다 보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리는 아니더라도 어쩌다 일자리로 연결되는 일이 있었다.
위기는 뜻밖에 찾아왔다. 지난해 9월 말부터 한 달 정도 정신건강이 심히 악화되어 삶에 의욕을 내기 힘든 상태가 계속되었다. 직장을 쉬던 상태에서 일용근로도 못 나가고 휴대폰 소액 결제로 소비를 하고 다녔고 나중엔 통신요금과 후불 교통카드 비용, 은행 대출 원리금 등을 제때 내지 못해 집에 독촉 우편이 은행으로부터 매일 날아오게 되었다.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하기 전이었으니 온 혈연가족이 이 사태를 알게 되었다. 연체로 인해 신용점수까지 수직하락하고 비상금 마이너스통장 연장 부결까지 걱정하게 되자 사정을 딱하게 여긴 주변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12월에는 처절하게 물류센터 단기 일용근로를 다니면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이따금 정신적으로 지치고 우울하고 힘들 때는 있으나, 그런 나를 받아들이며 주도적으로 스스로의 상태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다 삶에 소소하게 기쁘고 행복할 때는 나의 이런 면모들을 긍정하기도 하니 결코 스스로를 불행한 인생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물론 어떤 고난에도 '나는 행복합니다'만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사람답게 살기 참 힘든 삶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당사자를 '반동 세력'으로 보기 전에 귀 기울이고 소통해 나가자는 공감의 자세와 감수성이 필요하겠다고 느끼면서, 이쪽 이야기는 분량 상 다음 글에서 준비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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