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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장애공감가게’ 아시나요] “여기선 장애 없이 주문하고 장애 잊고 밥먹어요”

발달장애인, ‘우영우’처럼 사회에 나오도록 ‘공감가게’ 늘려가요

  • 기사입력 : 2022-07-14 21: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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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과 6월 밀양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가 7건 발생했다. 이들을 아프게 했던 것은 외로움이다. 사회는 평생 보살핌이라는 큰 짐을 오로지 부모에게만 지게 했고, 발달장애인과 부모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 속에 고립됐다.

    경남도에 등록된 발달장애인 수는 1만8556명. 도내 장애인 단체는 이 중 일반인만큼 바깥 활동을 하는 발달장애인은 10%가 채 안 된다고 설명한다. 반면, 시설에 거주하거나 보호자의 사정으로 바깥 활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장애인은 5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사회가 발달장애인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은 이들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경남 발달장애인 활동 저변 확대를 바라며 그들이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디딜 용기를 만들어주는 ‘장애 공감 가게’를 소개한다.

    지난 13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한 김밥가게에서 남정우(오른쪽)씨가 손가락으로 AAC(보완·대체 의사소통)형 메뉴판을 가리키며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난 13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한 김밥가게에서 남정우(오른쪽)씨가 손가락으로 AAC(보완·대체 의사소통)형 메뉴판을 가리키며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AAC 메뉴판 갖춘 ‘장애친화가게’
    사진·숫자·그림 등으로 메뉴 표현
    타인 도움없이 장애인 이용 가능


    ◇내가 먹고 싶은 건 ‘이거’에요= 지난 13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의 한 김밥가게에서 남정우(21)씨가 검지로 메뉴판을 짚으며 더듬더듬 얘기한다. “참치김밥 하나, 단무지는 빼주세요. 현금으로 계산할게요.”

    남씨는 발달장애인이다. 그가 이용한 메뉴판은 일반적인 메뉴판과 생김새부터 다르다. 왼쪽에는 음식 사진이 정리돼있고 가운데에는 숫자, 오른쪽에는 ‘주세요’, ‘빼주세요’, ‘화장실이 어디예요?’, ‘예’, ‘아니오’, ‘현금으로 계산할게요’ 등의 필요한 의사소통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남씨가 이용한 것은 AAC(보완·대체 의사소통) 메뉴판이다. AAC는 단순한 사진이나 그림을 이용해 이용자의 손짓 하나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다. 의사소통이 불편한 중증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 노인, 외국인까지 이용 대상은 다양하다.

    발달장애인이 직접 이용할 수 있는 AAC 메뉴판은 그들에게 주관적 선택을 열어준다는 것에서 의미가 크다. 이날 함께 가게를 방문한 남씨의 어머니 송천우(55) 씨는 “발달장애인은 부모나 복지사 등과 외출을 한다. 가게를 가서 주문하는데 보통 자기 의견을 얘기하기가 어렵다”며 “보호자가 대신 주문하는데 AAC 메뉴판이 있으면 발달장애인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한 인격체로서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부터 창원·마산 38곳 지정
    음식점·약국·병원·정육점 등 다양
    진해는 ‘나눔실천가게’ 67곳


    ◇장애인 활동 가능한 경남 꿈꾼다= 송씨와 남씨 모자가 방문한 김밥가게는 느티나무 창원시장애인부모회 창원발달장애인가활센터가 지정한 ‘장애공감가게’다. 가게 문에 ‘장애공감가게’ 현판을 달고 자영업자가 직접 AAC 메뉴판 이용 등의 교육을 받아 장애인이 스스럼없이 방문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한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창원과 마산지역에 음식점, 약국, 병원, 정육점 등 38곳이 ‘장애공감가게’ 현판을 받았다. 진해에서는 2017년부터 ‘나눔실천가게’라는 이름으로 현재 67호점까지 확장해 놓은 상태다. ‘행복공유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단위로 지정을 해나가고 있는 통영을 제외하면, 경남에서는 18개 지자체 중 창원만 유일하게 장애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장애공감 관련 가게를 늘려가고 있다.

    윤종술 느티나무 경남장애인부모회 회장은 “발달장애인 부모는 아이의 돌발 행동에 늘 눈치를 보고 있다. 그렇기에 활동 영역이 제한되고 위축되는 것”이라며 “장애공감가게는 그런 점들에 대해 사업주에게 이해해달라 부탁하고 또 우리 곁에 언제나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인식시켜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도 장애인이 가게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흔쾌히 현판을 달아준 점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장애 공감 가게’는 소상공인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창원장애인가활센터(☏ 070-7774-2022)에 문의하면 현판과 AAC 메뉴판을 지원해준다.


    도내 등록 발달장애인 1만8556명
    “눈치보지 않고 외출 가능해 좋아
    장애인에 대한 이해 더 늘었으면”


    ◇눈치 보지 않고 외출할 수 있길=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자녀와 외출을 결정할 때 많은 고민을 한다. 송씨는 아들과 함께 식당에 갔다가 면박당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중증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더 빈번하게 겪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장애공감가게처럼 장애인을 위한 환경을 갖추고, 받아들일 준비가 된 가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송씨는 “장애공감가게 사장님이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가게를 이용하는데 눈치 볼 일이 없다. 그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남씨는 “집 앞에도 이런 가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장애공감가게가 많이 늘어나 거주지 곳곳에 생겨난다면 자연스럽게 발달장애인의 외출도 잦아질 것이다. 비장애인 또한 발달장애인을 접할 일이 많아진다.

    송씨를 비롯한 부모들은 발달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회를 원한다. “우리 아이들이 돌발 행동을 해도 소음을 유발한다고 인상을 쓰고 나쁘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우리 곁에 함께 살아가는 장애인이구나 하고 이해해 줬으면 해요. 발달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녹아들어 당연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되는 게 우리의 희망입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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