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달장애, 국가가 책임져야

김거성 국제투명성기구 이사

얼마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에 대한 상영중지 가처분신청을 막아달라는 긴급한 탄원 요청이 있었다. 2017년 9월 토론회에서 장애아동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학교설립을 호소했던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개교 과정을 다룬 영화인데, 그 상영중지 가처분 취소를 위한 탄원서였다. 그 가처분신청은 취하했고, 대신 개교를 반대하며 토론했던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10초 정도 등장하는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한다.

김거성 국제투명성기구 이사

김거성 국제투명성기구 이사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지난해 후반기 사회복지 현장실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실습생을 받아주는 시설이 거의 없어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아는 분의 소개로 한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현장실습을 마칠 수 있었다. 실습기간 중 짧지만 장애인 본인들이나 또 그곳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고자 했지만, 실제 가족이 아닌 상황에서 이런 생각은 애초부터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발달장애국가책임제’의 타당성과 시급한 필요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 실습생인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성과였다.

히틀러 시대 독일에서는 우생학적인 관점을 내세워 장애인들을 세금을 갉아먹는 존재로 비하하였다. 나치당 월간지 ‘새 민족’ 표지에 ‘동족 여러분, 이것도 여러분의 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유전병 환자 사진을 싣고, “그에게 일생 동안 5만마르크의 돈이 들어갑니다”라며 ‘반(反)장애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또 유대인들과는 별도로 1939년 9월부터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장애인 약 30만명을 일산화탄소 가스 등으로 살해했다.

이런 배경에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다시는 이런 일들이 없도록 ‘유엔 인권선언’이 제정된 것 아닌가? 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형제애의 정신으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2008년 발효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우리나라도 2009년 비준하여 당사국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그 기본 원칙은 바로 장애인의 천부적인 존엄성 인정에 있다.

최근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정부의 목표에 문제가 있다는 어이없는 주장이 나왔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을 몰라서일까? 문제는 그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천에 한계가 있음을 고민해야 한다.

치매에 대한 국가책임제가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발달장애의 경우는 비슷한 어려움을 훨씬 오랫동안 겪고 있다. 그래서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까지 불행하게 된다.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도 더불어 존엄하게 또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길, 그 길목에 ‘발달장애국가책임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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