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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스크랩] 생물학자를 꿈꾸는 자폐성장애 민가빈 군 첫번째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6회 작성일 23-11-20 10:46

민가빈 군은 앞서 진행된 인터뷰 PonderED의 민동필 대표의 아들로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위치한 공립 대학인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Simon Fraser University) 2학년에 재학 중이다. 혈우병과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생화학/생물물리학 박사로 일하던 민동필 대표는 아들이 고기능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자 아들의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와 자폐아를 위한 교육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민동필 대표의 교육법을 통해 민가빈 군은 자폐로 인한 언어와 사회성 문제를 극복해 나가며 지금은 미래의 생물학자를 꿈꾸고 있다.

가빈 군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기까지 무척 망설였다.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과는 인터뷰 경험이 있으나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과는 직접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긴 시간 인터뷰를 잘 진행해 갈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됐다.

혹시 실수를 할까 봐 나의 무지가 의도치 않은 비수가 될까 봐 두려웠다. 일전에 썼던 내 칼럼에 달린 댓글이 있었다. '자폐증'이라는 단어는 좀 '거시기'하다고. 그 사람의 말인즉, 자폐증이라는 말은 자폐를 증상이나 병으로 인식해 고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므로 잘 못된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자폐란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이 아니라 다양성 그리고 정체성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자폐증' 대신 '자폐성 장애'가 맞는 표현이라고 했다. 댓글을 읽고 몹시 부끄러웠다.

장애인의 인권과 대해 소외된 소수자의 권리 신장을 위해 글을 쓰겠다면서 잘못된 용어에 대한 분별없이 옳지 못한 사회적 인식에 일조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과 동시에 드는 마음은 경각심이었다. 무지란 때로 악의보다 더 악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몰랐다'는 변명은 죄책감 없이 재생산을 더욱 쉽게 만든다. 

물론 '자폐증'이라는 단어는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자폐성 장애'와 함께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다. 짐작하건대 누군가는 완치를 위한 약물이나 치료법은 아직 없으나 '증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은 지나치게 민감한 의견이라는 일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은 틀리고를 떠나 다양한 생각들이 담론화 되어 궁극적으로 시선과 인식들이 동글어져 다치는 사람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글에 달렸던 댓글에 동의하기로 했고, 글 속의 '자폐증'이라는 표현은 '자폐성 장애'로 수정 요청되었다. 그 일로 인해 '자폐'라는 개념에 표현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민가빈 군과 대화해 보고 싶어졌다. 

인터뷰 요청에 대한 수많은 고사를 받은 경험이 있어 거절에 대한 걱정도 있었으나 고맙게도 가빈 군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었고 처음의 우려가 민망할 정도로 우리의 인터뷰는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됐다.

황서영(이하 황) : 안녕하세요. 가빈 군.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고마워요. 오늘도 학교 갔다 왔겠어요.

민가빈(이하 민) : 그렇지 않아도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에요. 제가 시험이 두 개 연달아 있어요.

황 : 아, 그렇구나. 바쁜 시험 기간인데 시간 내줘서 더 고마워요.

민 : 예.

황 : 그러면 제가 가빈 군의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덜 뺏기 위해서 신속하게 인터뷰를 진행해 볼게요. 혹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물어주세요. 최근에 아버지랑 한국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가빈 군에게 한국은 어떤 곳이었고 어떤 인상을 가지게 한 곳인지 궁금해요.

민 : 한국과 캐나다를 비교해 보자면요, 일단 한국에서는 쓰레기를 계속 들고 다녔어요. 버려야 되는데 쓰레기통이 안 보이니까요. 그리고 사람도 '빠글빠글'하고 공기도 탁해요. 그리고 사람들은 소리를 많이 쳐요.

황 : 사람들이 소리를 쳤다고요?

민 : 예. 소리를 크게 쳐요. 제가 부산에 자갈치 시장에 갔었는데 도다리 회를 먹고 싶어서 물어봤어요. '도다리 회 어떻게 떠주는 거예요?'하고. 근데 저한테 '살 거 아니면 묻지 마!'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무서웠어요. 그리고 한국은 여름에 푹푹 찌고 습해서 온몸이 젖는 느낌이 들었어요.

황 : 맞아요. 한국의 여름은 캐나다보다 습하죠. 그런데 자갈치 시장 일은 속상하네요. 물어볼 수도 있는건데 소리를 버럭 질러서 많이 당황스럽고 무서웠겠어요. 저도 도다리 회 엄청 좋아해서 자갈치 시장 가면 물어보고 싶을 것 같거든요.

민 : 예. 캐나다 사람 같지가 않아요. 여기 사람들은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데.

황 : 물론 한국 사람들이라고 모두 화를 내고 버럭 소리치지는 않겠지만 가빈 군이 짧은 여행 동안 느낀 게 어쩌면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의 인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리고 자갈치 시장이 부산이잖아요.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투박하고 무뚝뚝한 면이 있다고들 하거든요. 사투리도 그렇게 들리고요. 

민 : 아, 제가 사투리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네요.

황 : 사실 저도 경상도 사람이에요. 경상도 사람으로서 그리고 도다리 회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음...... 제가 대신해서 자갈치 시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가빈 군에게 사과하고 싶어요.

민 : 예. 괜찮아요. 뭐, 그럴 수도 있죠.

황 : 그럼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어렸을 때 횟집 수족관을 30분이나 아주 오랫동안 들여다봤던 경험이 있다고 민동필 대표님(가빈 군의 아버지)께 들었어요. 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수족관을 쳐다봤어요?

수족관 상어를 바라보는 어릴 적 민가빈 군. Ⓒ황서영 

수족관 상어를 바라보는 어릴 적 민가빈 군. Ⓒ황서영

민 : 어렸을 때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요. 그때 제가 생물에 대해서 관심이 엄청 많았었고 특히 물고기를 좋아했어요. 색깔이나 움직임 같은 것들을 보는 게 재미있어서 계속 찾아보고 공부하고 그랬거든요.

황 : 원래 물고기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는데 실제로 수족관에서 보니까 신기해서 계속 보게 되었나 봐요.

민 : 예. 물고기가 움직이고 헤엄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황 : 그럼 가빈군은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생각하는 게 다르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민 : 저는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일단 어렸을 때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있을 거잖아요. 다른 아이들은 다 같이 노는데 저만 친구가 없었어요.

황 : 그랬어요?

민 : 아무래도 제 행동이 좀 달랐으니까요. 친구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제가 계속했던 것 같아요. 태그(Tag)라는 놀이 있잖아요. 친구들이 싫어하는데 제가 그걸 계속했어요. 갑자기 뛰기도 하고 소리치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언어를 잘 이해 못 했던 것도 있겠죠.

황 : 아, 그랬군요. 그런데 지금 가빈 군과 대화를 하면서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과거의 가빈 군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제 말을 잘 이해하고 말도 잘하는 것 같은데요? 우리는 한국어로 얘기하고 있지만 영어로는 훨씬 더 잘할 테고요. 어렸을 때는 서툴렀는데 어떻게 그렇게 달라질 수 있었어요?

민 :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열심히 공부해서 그런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 할 때쯤 친구들을 많이 만나기 시작했어요.

황 : 접근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을까요?

민 :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이 뭔지, 그리고 왜 싫어하는지 그런 것들 공부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거죠. 

황 : 그런 공부들이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해 준 거네요?

민 : 그것뿐만이 아니라, 아까 제가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요. 제가 가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는데 공부를 많이 하다 보니까 공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황 : 아무래도 공부한 내용으로 말할 거리가 생기니 사람들과의 사교활동에도 도움이 됐겠네요. 가빈 군은 캐나다에서 자라서 캐나다의 정규 교육 과정을 받았잖아요. 혹시 캐나다에서 공부했던 경험 중에서 힘들었던 게 있었을까요?

민 : 어렸을 때 제가 공부를 너무 안 한 탓도 있었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어느 순간 갑자기 공부해야 하는 과목의 수와 공부 양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따라가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아, 공부 방법을 바꿔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황 : 캐나다에는 개인 보조 교사를 붙여 주잖아요. 그런 건 별로 도움이 안 되었나요?

민 : 별로 안 됐어요. 왜냐하면 모르는 문제를 그냥 풀어줘 버리니까요.

황 : 혼자 생각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줘야 하는데 아예 문제를 풀어줘서 큰 도움이 안 되었던 거군요.

민가빈 군의 학습 노트. Ⓒ황서영 

민가빈 군의 학습 노트. Ⓒ황서영


민 : 예, 그렇죠. 

황 : 캐나다는 교육 선진국이라고들 하는데 여전히 아쉬운 부분들이 있나 봐요. 그런 부분들은 계속 개선하고 고쳐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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