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탈시설’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문제가 ‘탈시설’의 프레임에 갇혀 장애인거주시설의 폐지와 유지, 혹은 반인권적 복지와 장애인시설복지 등 이원론으로 양분되어 갈등하고 있다. 이에 현재 추진 중인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두고 벌어진 갈등을 조명하고, 탈시설화 운동의 현실적 문제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탈시설(화)가 추구하는 정상화(Normalization) 이념

먼저 탈시설화(Deinstitutionalization)의 이념이 되는 정상화(Normalization) 개념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삶의 방식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자는 것으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사회적, 문화적 생활을 할 권리가 있음을 뜻한다.

그동안 장애인복지의 이념으로 자리를 잡았던 Social Integration(사회통합)이 장애인 재활과 사회 포용을 동시에 강조했다면, 최근에 국제연합에서 추구하는 장애인복지의 이념인 Inclusion(포괄적 통합)은 비장애인이 지역사회 삶의 전 영역에서 장애인의 재활과 관계없이 있는 그대로 포용하여 함께 살자는 것으로 진화되었다.

또한 유엔장애인인권협약 26조에서는 지역사회의 물리적, 제도적 환경 변화와 장애인식개선을 강조하는 가활(Habilitation)과 장애의 원상회복인 재활(Rehabilitation)이 장애인의 권리라고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탈시설화가 추진하는 방향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다.

지역사회자립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탈시설(화) 운동의 찬반양론

탈시설에 찬성하는 측은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입소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입소된 것이므로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탈시설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발생하고 있는 학대 등 인권침해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장애인의 인권 존중과 지역사회 자립과 독립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물리적·심리적·제도적 포용성 강화하고, 개별화 및 맞춤 서비스 등을 통하여 인간다운 삶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기간을 정해 놓고 전면적인 탈시설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CRPD)과 탈시설 성공사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반면 탈시설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거주시설의 문제는 거주시설의 현대화 및 사생활을 보장하는 운영개선으로 개혁이 가능하고, 전문적인 의료 및 간호지원, 안전 및 보호측면을 고려하여 거주시설의 다양화·특성화·전문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는 지역사회자립 준비가 부족하므로 전면적인 탈시설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장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장애인복지 선진국의 재시설화 사례, 탈시설 실패사례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재시설화란 대형시설을 소형시설로 변경하는 것으로 오스트리아의 경우 16인 이하 시설로 변경하면서 기존 시설의 경우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예외로 하고 있다.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탈시설화 운동의 현실적 문제

탈시설이 원래대로 추진되었다면 다음 단계는 장애인을 분리하여 교육하는 특수학교, 특수학급뿐만 아니라 치매 및 중풍환자(고령장애인)를 보호하는 노인요양시설 등도 폐지되는 방향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또한 장애인끼리 일하는 장애인보호작업장, 장애인근로사업장 폐지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탈시설화에 대한 이념은 이상적으로 좋은 이론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탈시설화에 대한 갈등의 원인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이상론과 현실론의 입장 차이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탈시설을 반대하는 쪽에서도 지역사회자립이 가능한 경증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진행하는 탈시설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단지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지역사회 자립이 어렵기 때문에 탈시설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장애인지원주택에 강제로 입소시키는 것은 인권침해이므로 반대하는 것이다.

거주시설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한 채 일방적이고 강제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배치되는 것이다. 장애인이 스스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경우 보호자가 결정하면 되는 것이지 탈시설을 옹호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탈시설화에 대한 필요성으로 제기된 시설의 학대 등 인권침해는 가정과 학교, 장애인지원주택 등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권문제이다.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다. 또한 업무 강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업무 강도를 줄이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거주시설에서 발생된 인권침해 문제를 확대하여 시설폐지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장애인지원주택에서도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제대로 돌보지 않아 사망사고까지 발생한다. 또한 거주시설을 폐지하기 위해 거주시설을 감옥이라고 과장하는데 장애인지원주택도 중증발달장애인에게는 더욱 심각한 감옥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의 준비부족도 보완해야 한다. 지역주민 의식은 아직까지 배타적이고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일자리 부족과 다양한 시설 부재 문제도 있다. 예산 확대에도 한계가 있다.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인 1인을 탈시설하여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서비스 비용이 2배 이상 필요하다.

정부 예산은 한꺼번에 확보할 수 없고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밖에 없다.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에 따른 생산가능 인구 감소로 복지예산과 관련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속가능성 면에서 그렇게 밝지 않다. 2020년 생산가능 인구(15~64세)는 3,738만 명이었으나 2050년에는 2,419만 명으로 1,319만 명이나 감소한다. 또한 법과 제도준비도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탈시설 방향에 대한 장애인복지계의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시 조례에 대한 폐지서명이 진행되고 있고 경기도는 조례제정을 앞두고 갈등 중이다.

탈시설화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로 대립하는 것은 탈시설 프레임에 갇혀 장애인복지의 궁극적인 목적인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망각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탈시설이 곧 장애인복지증진 즉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역사회 지원주택이 좋을 수도 있지만 거주시설이 좋을 수도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지원주택도 또 다른 하나의 시설이라 할 수 있다. 단지 1인실을 사용하므로 생활환경이 쾌적하고 개별서비스를 받으며 조금 더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장점이지만 고독할 수 있고 간호사 등 전문 직원이 없으며 감독이 소홀하여 더욱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될 수 있고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발상을 전환하면 거주시설의 시설자원을 활용하여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면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탈시설화 운동의 개선방향, 시설현대화 병행 추진

탈시설 운동의 찬반 입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탈시설을 찬성하는 쪽과 탈시설을 반대하는 쪽 모두 장애인의 행복추구를 말하는데 정작 장애인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인권침해가 일어난다면 잘못된 것이다.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갈등 중인 것은 장애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지역사회 자립준비 부족, 장애인지원주택에서 제공하는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서비스의 한계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하고 타협하고 상생하는 전략을 만들어 양쪽의 간격을 좁혀 나가야 한다.

즉,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지역사회 자립을 원하는 경증장애인에게는 장애인지원주택 등을 제공하여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고, 자립이 불가능한 중증발달장애인에게는 1인실 제공 등 사생활이 보장되는 시설 현대화와 운영개혁을 통해 인권이 보장되는 두 가지 방법을 병행 추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설운영 지원 예산을 증액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탈시설과 시설현대화 병행정책은 그동안 탈시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한 미래지향적인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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