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스크랩] 부모님이 안 계셔도 밥 굶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최근에 월급통장이 바닥을 빼꼼히 드러내 보이는 경험을 했다. 저축을 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나는 부모님의 지원으로 저축을 월급만큼 하고 있다. 월급이 저축으로 다 나가 쓸 돈이 없을 땐 보태주신다. 먼 훗날 혼자 살게 될 때를 염려한 부모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밥이라도 굶지 않으려면 돈이 꼭 필요한 세상이다.
지난 몇 달간은 적금 만기 된 것이 월급통장에 두둑이 쌓여 있어 다소 풍요로운 생활을 경험했다. 월급통장으로 들어온 적금으로 또 다른 적금을 붓기도 하고 부모님과 은행의 도움을 받아 투자를 하기도 하며 지냈다. 물론 재테크에만 열을 올리지는 않았다. 내일 일은 알 수 없고 죽어서 싸 들고 갈 수도 없는 게 돈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한번 밟아 보고 홀딱 반한 가정용 재봉틀을 비롯해서 그에 따른 각종 부자재를 원 없이 질렸다. 올해 초에는 삼 남매가 부모님 환갑 기념으로 명품가방과 안마의자를 선물해 드리는데 돈을 보태기도 했다. 동생들은 내가 버는 돈이 적다고 자신들이 내는 돈보다 절반만 내도 된다고 했는데 이 시기만 해도 통장에 돈이 두둑하게 쌓여 있었노라고 이실직고했다.
만기 되어 내 통장으로 들어온 적금은 이렇게 많은 필요한 곳에 쓰였다. 돈이 여기저기 아무리 빠져나가도 세 자릿수를 거뜬히 유지했던 통장은 어느 달엔가 두자리 수로 내려오더니 두 달 전에는 한자리 수로 내려왔다. 수입은 정해져 있는 반면에 돈 빠져나갈 구멍은 많았으니 만기 되어 내 통장으로 들어온 적금이 도깨비방망이가 아닌 이상 예견된 수순이었다.
세 자릿수였던 숫자가 한자리 수로 내려오자 가슴이 덜컥했다. 내가 불안한 눈빛을 하며 당장 쓸 돈이 없다고, 적금 좀 줄이면 안 되냐고 말씀드리자 부모님께는 돈을 보내오셨다. 보태줄 터이니 적금 붓기를 멈추지 말자고 하셨다. 부모님께 다달이 용돈을 드리지 못할망정 받아 썼다.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모임 회비를 낼 때 앓는 소리 하지 않을 수 있었고 내게 시간과 마음, 재물을 써준 지인들에게 소소하게나마 답례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 품을 떠나게 되는 날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부지런하지 못한 내가 혼자 살게 되면 십중팔구 밥 해 먹기 귀찮다며 끼니를 거르거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비장애인도 자취를 하게 되면 대부분 이렇게 하지 않나?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독립을 하려면 삼시세끼 밥을 꼬박 챙겨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 필요는 없다.
요리를 하기 어려우면 사 먹으면 된다.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하루 한 끼 정도는 빵으로 때워도 된다고 생각한다. 반조리 식품, 배달음식도 먹을만하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엄마손 식당을 찾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일 것이다.
혼자 살게 되더라도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먹는 문제는 해결했다고 하자. 나 혼자서도 돈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체감하지 못하는 거지 사람답게 살려면 돈 들어갈 일이 많아진다. 식당에서 밥을 사 먹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려 해도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달에 수십만 원에 달할 서울시내 월세부터 시작해서 수도세, 전기세, 관리비 등 돈 들어갈 데가 생각보다 많다.
부끄럽지만 기초생활수급자격을 알아본 적이 있다. 하루 4시간 근무로 한 달에 백만 원도 안 되는 급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부모님께 얹혀 살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다음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 콩알보다 작은 돈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 생각까지 치닫자 부모님과 나는 자연스레 동주민센터로 발길이 옮겨졌다. 아쉽게도 나는 하루 4시간이라도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고 그간 모아놓은 재산이 있어 자격이 없다고 한다. 이쯤 되면 8시간 근무 일자리에 취업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독자들이 계실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남들처럼 종일 근무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갖춰졌다면 좋겠다.
기초수급자격에 해당 되지 않는다는 걸 아신 부모님께서는 어디 가서 사기만 당하지 않는다면 적은 돈으로도 먹고살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람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는 나는 내 돈을 빼앗으려는 나쁜 사람들의 꾐에 넘어갈 위험이 없지 않다.
재테크로 돈을 불릴 줄도 모르고 버는 돈에 비해 씀씀이가 헤픈 나는 사회초년생부터 모아놓은 돈을 단 몇 년 만에 다 날려버릴지도 모르겠다. 앞서 밝혔듯 통장에 돈이 조금 쌓여 있다고 계획 없이 돈을 펑펑 써 댄 과거의 나를 보면 미래의 내가 어떨지 불 보듯 뻔하다. 비장애인도 꾐에 넘어가고 돈 관리를 잘하지 못해 빚쟁이로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돈 관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지적장애를 가진 나는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다음에 독립하게 된다면 다른 거보다 나와 같은 경증 발달장애인도 가족 없이 혼자 살게 될 때 금전관리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부터 알아봐야겠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출처 : 에이블뉴스 -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http://www.ablenews.co.kr)
관련링크
- 이전글[언론스크랩] 치료감호 발달장애인들, 국가에 재판부에 두번 울었다 22.12.09
- 다음글[언론스크랩] 발달장애인들 “탈시설 반대하는 이종성 규탄” 면담 요구 22.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