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스크랩] 조금 다른 아이들은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까
[미디어비평] MBC ‘대한민국 자폐가족 표류기’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역삼역…”
2년 전, 국내를 비롯해 해외까지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우영우(박은빈)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1%의 천재적인 두뇌를 이용해 대형 법무법인에서 살아남는 생존기를 펼친 드라마다. 4년 전 방송한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도 자폐증 증상을 보이는 캐릭터 문상태(오정세)가 등장한다. 문상태는 뛰어난 암기력과 타고난 그림 실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드라마는 자폐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지적을 받았다.
자폐 장애인을 캐릭터로 보여준 드라마들이다. 왼쪽부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이코지만 괜찮아’ 포스터. 출처 좌측 ENA, 우측 tvN
자폐증이란 만 3세 이전에 나타나는 신경 발달 장애 중 하나로 사회적 상호 작용 및 의사소통 결핍을 보이는 증상을 말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2013년 국제 진단 분류 중 하나로 채택됐다. 다양한 수준의 자폐증 증상들이 스펙트럼을 이루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앞서 소개한 두 드라마는, 자폐인을 향한 편견을 바로 잡고자 하는 선한 의도로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자폐에 관한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과장된 묘사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 문제를 단순화하고 사회의 관심을 차단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자폐 장애 인식 개선을 시도한 MBC
지난 4월 20일과 27일, 2부에 걸쳐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자폐가족 표류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는 현실에 정확하게 접근한 프로그램이다. 1부에서는 자폐 가족 아이들 5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발가락 세 개가 부러졌음에도 다리를 절뚝거리기만 할 뿐, 다쳐도 다쳤다고 표현하지 않는 라온이. 어린 시절 늦게 말이 트인 부모가 자신의 아이도 비슷하리라 생각해 증상이 뒤늦게 발견된 승환이. 유난히 예민한 감각을 지닌 탓에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은이를 비롯해 다양한 증상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부모는 아이들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계속해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자폐의 증상이 워낙 다양해 자기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고 치료 체계도 미흡하다.
2부에서 제작진은 이런 현실에 주목해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자체적인 자폐 스펙트럼 치료 커리큘럼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증상을 보이는 자폐 아동들에게 맞춤형 교육과 치료를 적용하는 ‘100일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00일 후, 자폐 아동들은 사회성과 의사소통에서 한결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 다큐멘터리는 자폐 가족이 겪는 다양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달했고 일정 부분 자폐 아동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많은 자폐 아동 부모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자폐 가족의 현실을 담아낸 MBC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자폐가족 표류기’. 출처 MBC
방송은 세계적으로 자폐 인구가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100명 중 한 명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미국 아동 36명 중 한 명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보이고 있으며 그 비율은 늘고 있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국내에서도 매년 자폐성 장애가 8.1% 증가하고 있다. 자폐는 당사자나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야기다.
미완에 그친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보고
놀랍도록 다양한 증상 때문에 매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다. 자폐 아동 부모에게도 자폐 스펙트럼은 낯설다. 다큐멘터리에서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부모는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고민하는 시간 동안 지체된 치료 시기가 아이의 장애를 더 악화시킨 것은 아닌지 괴로워한다. 해당 장면은 많은 자폐 아동 부모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다.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내면을 읽으려 노력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전했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아이의 모습을 촬영해 영상 콘텐츠로 제작하는 부모, 집 밖으로 나가는 걸 싫어하는 아이가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놀이공원을 다시 방문해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부족한 치료 시설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에게 적합한 치료 방식을 찾으려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100일간의 프로젝트 중 미술 치료 교실 장면. MBC ‘대한민국 자폐가족 표류기’ 화면 갈무리
대다수 자폐 아동 가족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내용은 아쉬움을 남겼다. 예를 들어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는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아동의 치료가 빠를수록 정상적인 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한다. 방송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디지털 발달 치료와 그 효과가 소개되었다. 자폐 아동을 둔 일부 부모는 아이에게 조기 치료를 받게 하고 싶어도 비용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는 부모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내용이라는 의견을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 올렸다. 치료만을 강조한 마무리도 프로그램의 자폐 장애 인식 개선 취지를 모호하게 한다. 사회가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폐 아동도 조금 다른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 결론이었다.
자폐 아동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사람들은 여전히 낯설어하고 불편해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극적인 연출로 자폐 스펙트럼을 향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면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자폐가족 표류기’는 현실 속의 자폐에 접근해 생소함을 작은 이해로 변화시켰다. 공동체 속 숨겨진 이야기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 미디어의 중요한 기능이라는 점에서 MBC의 이번 시도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자폐에 관한 사회적 인식은, 일회성 문제 제기로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러 미디어에서 발전적인 문제 제기를 이어가길 기대해 본다.
출처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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