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스크랩] 평균 54살 중3 장애인들 “고등학교 가고 싶어도 학교가 없어요”

“이제 글자도 읽고 쓸 수 있어요.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 가고, 대학교도 가고 싶어요.”
대구 동구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중3 교실에서 맨 첫줄에 앉은 발달장애인 이상근(53)씨가 말했다. 지난 23일 오전 교실에서 만난 이씨는 에이포(A4) 용지에 “고등학교 가고 싶어요”라고 꾹꾹 눌러썼다. 그는 12살 때 장애인 거주 시설에 들어갔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2017년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부터 야학에 나왔다. 그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대학교 졸업하는 걸 봤다. 나도 대학생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야학에는 중3 학생이 이씨를 포함해 10명이다. 이들은 오는 9월 야학을 졸업한다. 평균 나이 54.4살. 모두가 고등학교를 가고 싶다. 진학을 희망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한글 공부 다 했으니 다른 책도 공부하고 싶어요.” 같은 반 서정협(61)씨의 말이다. 이정모(48)씨는 컴퓨터를 배워 자격증을 따는 게 꿈이다. “자격증을 따면 취업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전정국(63)씨는 “수학을 잘한다. 영어는 어려워서 계속 배우고 싶다. 학교에 와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은 ‘장애인 평생교육시설’로 분류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성인 장애인을 위한 학력인정 문해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2018년 초등과정을, 2021년엔 중학과정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설해 첫 중학교 졸업생이 나온다. 하지만 졸업생들이 갈 상급학교는 더 이상 없다.
황보경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사무국장은 “평생교육법에 따른 학력인정 문해교육과정으로는 고등학교를 운영하진 못한다”고 말했다. 방송통신고등학교 등에서 학력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장애인에겐 접근이 쉽지 않다. 황 국장은 “현실적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환경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 등을 상대로 한 특수교육법은 고등학교까지를 의무교육 과정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이 포괄하는 연령대는 3살부터 17살까지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졸업생처럼 학령기 때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성년 장애인으로선 현행법 체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이런 사정 탓에 성인 장애인이 별도의 고등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이 21대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상임위 심의가 미뤄진 상태에서 국회 임기가 끝나게 됐다.
조민제 교장은 “늦은 나이에 글자를 깨쳐 이제는 혼자서 지하철도 타고, 미래에 대한 꿈도 꾸게 됐다. 단지 남들처럼 고등학교에 가고 싶을 뿐인데, 법 제정은 결국 좌절됐고, 교육부는 여전히 검토 중이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교육청이 빨리 대안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구교육청은 고등학교 과정 설치에 난색을 보인다. 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성인 장애인의 고등학교 과정을 마련할 법적 근거가 없고, 예산 등을 확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졸업예정자에 대해 실질적인 교육 방안을 검토하고, 앞으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등이 이루어지면 여건에 맞춰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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