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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스크랩] 아버지 죽음 이후, 안산시 발달장애형제의 삶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13회 작성일 24-08-01 11:12

아들의 죽음으로 소환된 ‘아버지 죽음 이후’ 형제의 삶
2년 전, 발달장애형제 돌봄 부담으로 자살한 아버지
그 후, 24시간 지원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간 형제

배석준(가명)의 장례식장 모습. 사진 김병태 배석준(가명)의 장례식장 모습. 사진 김병태 

- 아버지와 두 아들

지난 6월 11일,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있는 장애인자립주택에서 배석준(30세, 가명)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자립주택 담당자와 활동지원사에 의해 발견됐다. 병사(만성신장질환 급성 심부전)였다. 안산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두 살 터울의 동생 배남준(가명)이 상주로 문상객을 맞았다.

배석준은 2년 전 사망한 배영철(가명)의 첫째 아들이다. 배영철은 2022년 6월 3일, 반월호수공원 인근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에겐 20대 후반의 중증발달장애인 아들이 두 명 있었다. 전날 활동지원사가 배영철과 연락이 닿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고, 수색 끝에 숨진 배영철을 발견했다.

배영철의 죽음은 중증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비극적 죽음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 비마이너 취재에 따르면, 중증발달장애가 있는 첫째 아들(배석준)의 ‘어려운 행동’으로 인해 그는 오래 힘든 시간을 겪었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던 첫째 아들이 폭행 사건에 휘말려 배영철이 장기간 집에서 아들을 혼자 돌봐야 했다. 아들은 지나가는 차에 돌을 던지고, 운전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기도 했다. 성인 중증발달장애인 대부분이 그러하듯, 활동지원시간이 적은 데다가 ‘중증발달장애’로 활동지원사 매칭이 잘되지 않아 자녀 돌봄은 온전히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내와는 오래전 이혼한 상태였다.

그해는 유독 비슷한 죽음이 잇따랐다. 3월에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8살 발달장애아들을 죽이고, 시흥시에선 암 투병 중인 어머니가 20대 발달장애 딸을 목 졸라 살해했다. 5월에는 서울 성동구에서, 인천 연수구에서 어머니가 중증장애자녀를 살해한 뒤 목숨을 끊었다. 연속적인 사건에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해 7월, 상복을 입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소속 부모 활동가들은 가관(假棺)을 들고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장례식을 벌였다. 그러나 정부는 참사 대책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듯 아무 응답이 없었고, 여전히 없다. 살아남은 중증발달장애 자녀들의 존재는 잊혔다.

2022년 7월 1일, 중증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연이은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에 대한 정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상복을 입고 가관을 든 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전쟁기념관까지 행진하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2022년 7월 1일, 중증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연이은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에 대한 정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상복을 입고 가관을 든 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전쟁기념관까지 행진하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 아버지 죽음 이후

2년 후, 아들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죽음 이후가 소환됐다. 배영철의 사망 후, 안산시 장애인단체들은 안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인 발달장애형제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루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장애인거주시설로 보내자’는 안산시의 태도에 협상은 난항을 겪을 때도 있었으나, 지역 장애인단체의 꾸준한 요구에 형제는 안산시의 지원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에서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형은 그 여느 때처럼 주간보호센터를 오가며 낮시간을 보냈고, 놀고 싶은 날엔 적당히 땡땡이를 쳤다. 트로트 노래와 펭수 인형을 좋아하며 한겨울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까지 다 먹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였다. 동생은 2022년 8월부터 안산단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안산단원센터)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지자체가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중증장애인들을 우선 고용하여 문화예술활동, 권익옹호활동, 장애인식개선교육 활동을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는 일이다. 동생은 형보다 장애가 경했지만 그 역시 중증발달장애인이었다. 이 일자리를 통해 그는 생애 처음 최저임금을 받았다.

평온한 일상에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온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집 계약이 끝나 이사를 가야 했다. 때마침 경기도는 보건복지부 탈시설 시범사업으로 자립주택을 운영 중이었다. 탈시설장애인만 입주 가능했으나 안산시 내 사례회의팀 논의 끝에 형제의 입주 허가가 떨어졌다. 자립주택은 다행히 기존에 살던 곳과도 멀지 않았다.

2023년 12월, 성인이 되어서도 줄곧 한집에 살던 형제가 각자의 집을 갖게 됐다. 그들은 바로 옆집에 살았다. 10평 남짓한 ‘나만의 집’을 갖게 되면서 같은 집에서 살며 부대끼던 형제간의 갈등은 자연히 해소됐다. 두 사람의 활동지원시간에도 변동이 생겼다. 아버지 사망 후, 안산시가 형제에게 지원하던 하루 24시간 지원이 자립주택에 입주하면서 중단된 것이다. 대신 월 200시간의 추가 지원이 생겼다. 그렇게 형에겐 월 360시간(복지부 150시간, 경기도 10시간, 자립지원주택 200시간), 동생에겐 월 540시간(복지부 210시간, 경기도 30시간, 자립지원주택 200시간)의 활동지원시간이 주어졌다. 형의 장애가 더 중했으나 왜 동생보다 활동지원시간이 터무니없이 더 적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언론스크랩] 아버지 죽음 이후, 안산시 발달장애형제의 삶2022년 6월 7일, 안산시청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 등이 아버지 사망 이후 남겨진 발달장애형제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 마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강혜민 

- 공백의 시간 동안

인간적 삶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적 지원체계가 본래의 취지를 몰각할 때 삶의 공백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은 각자의 활동지원사가 ‘옆집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으로 부족한 시간을 느슨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틈새 없이 지원받던 서비스의 부재를 온전히 메꿀 수는 없었다.

활동지원사는 새벽 1~2시에 퇴근했다. 배석준은 컨디션에 따라 새벽까지 자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면 주방에 남은 음식을 바깥에 뿌리는 등의 ‘해프닝’이 일어났다. 활동지원사가 없을 때 발생한 일들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지병이 있던 배석준은 8월 초 콩팥 제거 수술을 예약해 둔 상태였다. 6월 11일 새벽 1시, 활동지원사는 배석준이 평소보다 물을 많이 먹어서 ‘몸이 안 좋냐’고 묻자 ‘괜찮다’는 답을 들었고, 아침에 출근할 활동지원사에게 문자로 이를 공유하고는 퇴근했다.

아침 7시 40분, 옆집에 사는 동생의 활동지원사가 배석준의 건강과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그의 집에 잠시 들렀다. 배석준이 코 골며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8시경에 배남준의 집으로 건너갔다. 배석준은 원래대로라면 10시에 주간보호센터에 가야 하나 이날 새로운 활동지원사와의 약속이 있어서 주간보호센터에 가지 않았다. 오후 2시 30분, 자립주택 담당자와 활동지원 담당자가 전화를 해도 배석준이 받지 않았다. 방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배석준(가명)의 장례식장 모습. 사진 김병태 배석준(가명)의 장례식장 모습. 사진 김병태 

- 아버지와 형이 떠난 자리에서

배석준의 죽음은 급작스러웠다. 기척 없는 이별에 모두가 황망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그를 지원했던 사람들은 아버지 사망 이후의 삶을 읽어낸다. 중증발달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배석준의 삶이 실재했다. 형제의 활동지원을 담당했던 정혜희 안산단원센터 사무부장은 “집과 충분한 활동지원시간, 일자리,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중증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아버지가 알코올의존증이 있어 자녀 양육이 잘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 돌아가신 후 더 잘 살던 것 같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이는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의 배석준이 훨씬 밝고 안정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사망 이후의 배석준 삶에 대해 사람들의 인상은 조금씩 달랐으나, 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 자유분방하게 살던 배석준의 모습들을 각자의 방식대로 기억했다.

형이 떠난 후, 동생에겐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다시 지원됐다. 정혜희 사무부장에 따르면 얼마 전 배남준은 “활동지원사가 너무 오래 붙어 있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마저 떠난 자리에서 배남준이 살아간다. 배남준의 일상은 도리어 우리사회에 질문하는 듯하다. ‘내가 자유롭게 살아갈 방법은 없나요?’ 우리사회 평균치의 위험을 적당히 감내하며 중증발달장애인이 ‘위험하면서도 안전하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배남준이 지금처럼 그만의 고유성을 가지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할까.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제도만으로 감당 불가능한 삶이 있다면 그것은 현 제도의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일 것이다. 그 한계선 위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지난 5월 또다시 국회 앞에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 대책을 요구하며 분향소를 차렸다. 영정 앞에 피워둔 향이 국회를 향해 분다.

출처 :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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