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813.7-탁34ㅎ
황색 점멸신호 : 탁명주 장편소설
지은이: 탁명주
2021|강
ISBN : 9788982182877
탁명주의 장편 『황색 점멸신호』에서는 주인공 서민교의 물러설 수 없는 삶의 근거로서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 업무가 촘촘하게 보고되는데, 어쩌면 여기가 소설의 실질적 중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돌봄 노동의 구체적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 과정에서 주로 한부모가정 및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사회적 돌봄과 관련된 문제들과 사회복지사 업무의 열악한 상황이 낱낱이 드러난다.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아이들의 참혹한 희생이 일어나고야 말 때, 서민교가 보이는 엄청난 자책과 절망은 이 소설이 지금 한국 사회에 보내는 다급한 ‘점멸신호’처럼 느껴진다. 경고는 아동 돌봄 노동의 주변에서만 울려오는 것은 아니다. 이주 노동자들의 어두운 그늘이 조명되고, 인터넷 해킹을 통한 사이버 성폭력의 실상이 충격적으로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황색 점멸신호』를 긴박하고 뜨거운 사회 소설로 읽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황색 점멸신호』가 좀 더 깊고 섬세한 인간의 이야기로 우리의 마음을 타격하는 것은 주인공 서민교가 일종의 자기 처벌의 형식으로 부여한 특별한 고독과 내성의 시간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얄궂게 중단되어버린 젊은 날의 사랑, 아르바이트 직장 상사의 성폭력 등 분명한 트라우마적 과거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지역아동센터의 업무를 제외하고는 거의 고립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하는 서민교의 지나치게 염결하다 싶을 정도의 고독에는 타락한 세상을 거절하는 단호한 정신의 높이와 자기 윤리가 있다. 서민교는 어쩌면 한국 소설이 한동안 망각해온 조금은 본래적인 실존과 내성의 인물 유형일 수 있다. 서민교의 특별한 고독에는 가령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 부슈만과 같은 인물에게서 떠올릴 수 있는 강렬한 삶의 열정과 자유의 지향이 억눌린 형태로 접혀 있어, 그 자신조차 스스로에게서 내연하는 불꽃의 강렬함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다. 이 과정에서 한 남자의 모호한 선의가 점차 다른 색깔의 얼굴로 바뀌어가는 가운데 서민교가 지켜온 삶의 울타리가 조금씩 침범되고, 마침내 끔찍한 악몽으로 화하는 이야기가 높은 서사적 밀도 속에 펼쳐진다. 무심코 지나친 우연의 조각들로부터 악몽의 기원을 재조립하게 만드는 스릴러적 긴장도 은밀하게 진행된 사건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악몽이 도착한 바로 그 자리에서 서민교는 오랜 고립으로부터 깨어나기 시작한다. 함부로 침해되고 폭력적으로 짓밟힌 개인의 성소는 이제 잃어버린 열정과 자유를 향한 출발선이 된다. 이 순간, 사회 소설의 외장 안에 있던 『황색 점멸신호』는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로 다시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