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863-알89ㅇ
어머니
알퐁스 도데 원작 ; 피치마켓 번안 ; 홍성훈 각색 ; 혜석 그림
2017|피치마켓 역자
ISBN : 9791192986395
“그리움을 삭이고 삭여 북받치는 감정이 다 사그라든 노년에 이르러 어머니께 바치는 시”
원로 시인 이동순이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신작 시집 〈어머니〉(도서출판b)를 펴냈다. “어머니와 나의 인연은 고작 스무 달 안팎이다. 내 태어나기 전 어머니 배 속에서의 열 달과 출생 후의 열 달이 고작이다. 대체 이 무슨 인연의 곡절인가”(「시작 노트」)라며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어머니를 향한 통한의 사모곡이다. 오래전부터 어머니 테마로만 쓴 시 작품을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은 것이다. 봄밤에 두 눈이 퉁퉁 붓고 남을 만큼 애뜻한 어머니를 향한 시들이 넘치는 시집이다.
“어느 겨울밤/숙모는 화로를 껴안고/부젓가락으로 짚불 다독이며/어렵게 말 꺼내셨지//너 안 생겼으면/네 엄마가 죽지 않았어/그 전쟁 통에 너를 배 속에 품고/피란 다니느라//성한 사람도/살아내기 힘든 세상인데/애까지 가져서 얼마나 고단했을꼬”라는 숙모의 전언에 “그것도 모르고/이날까지 난 엄마를 원망했어/키우지도 못할 거 왜 낳으셨냐고/바보 같은 생각”(「숙모님 말씀」)도 했다며 고개를 떨구고 눈물만 뚝뚝 떨궜다고 말한다.
시인은 고작 배 속의 열 달, 태어나서 열 달을 함께한 어머니지만 “내가 오늘날 시를 쓰고, 문학을 하게 된 것도 모두 어머니를 향한 하염없이 솟구치는 그리움을 내 스스로 풀기 위하여 저절로 그리된 것이라 나는 여”(「시작 노트」)기고 있다. 〈부모은중경〉에 나오는 열 가지 막중한 은혜를 한 자 한 자 새기며 쓴 시는 단순히 시인 한 개인의 어머니를 노래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버이날이면 우리는 어버이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데 시인이 고른 꽃은 보랏빛 ‘속썩은풀’ 꽃이다. 약용으로도 쓰이는 ‘황금(黃芩)’이라는 여러해살이풀인데 3년이 되면 속이 썩기 시작한다는 순우리말 풀 이름이다. 어머니를 향해 “얼마나 기다림에 속이 썩어/이름조차 속썩은풀이 되었습니까” 묻는 듯한데 이내 “당신은 영락없는 우리나라 어머니의 모습입니다/보랏빛 고개를 떨구고/가녀린 잎을 차분히 접고 있는 자태에선/땅 꺼지는 한숨도 들려올 듯합니다/이 나라가 원수로 갈라서던 전쟁 끝에/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지금도 기다리시는 당신”으로 시상은 확장된다. 전쟁으로 아픔을 겪은 우리나라 모든 어머니의 가슴에 달아드리는 꽃으로 말이다. 「속썩은풀」에는 부모를 향한 모든 자식들의 공경심과 죄책감이 표면적으로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강력한 메타포가 숨어 있어 감동을 준다.
시집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말고도 어머니와 어린 자식 다섯을 남겨두고 “일본 가서/발전소 건설 노동자로 살았고/바쁜 나날에 편지도 한 장 없”(「엄마의 맨발」)던 아버지 이야기, “맏형은 문둥이로 스물셋에/셋째는 아기 때 홍역으로 떠”(늘 가슴 저린다」)났다는 두 형의 이야기, 독립운동을 하다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 아들 없이 절손한 외가의 이모들 이야기들이 보태져 시인 집안의 파란만장한 가계사를 엿보게도 해준다.
시인이 사무치는 어머니 이야기를 젊을 때가 아니라 망팔의 노년에 이르러 시집으로 묶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움을 삭이고 삭여 북받치는 감정이 다 사그라들기를 기다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