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808.3-루56ㅇ
아큐정전
루쉰 원작 ; 윤수천 엮음 ; 이민정 그림
2008|지경사
ISBN : 9791194706205
루쉰, 20세기 중국 사회를 정면으로 고발하다
중국 현대문학의 첫 진동, 『아큐정전』
희화화된 한 인간이 겪는 비극에 담긴 민중의 자화상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루쉰의 《아큐정전》은 시대와 인간을 응시하는 기록이다. 신해혁명 전후 혼란스러운 농촌 사회를 배경으로,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하층민 아큐의 삶을 통해 당대 중국 민중의 모습과 사회적 모순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루쉰은 “아큐의 형상은 이미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몇 년 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중국 국민성의 은유적인 상징과도 같은 아큐의 일생을 포장 없이 묘사함으로써, 근현대 중국 사회의 병리와 혁명의 한계를 명확히 짚어냈다.
주인공 아큐는 늘 억압받고 굴욕당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인 ‘정신적 승리법’으로 고통을 합리화한다. 흔히 쓰이는 ‘정신 승리’라는 표현이 바로 이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이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자기기만은 한 개인의 특성을 넘어, 변화의 기로에 선 민중의 무력함과 봉건적 사고를 상징한다. 루쉰은 아큐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에 맞서지 못하는 집단적 심리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혁명조차 진정한 구원을 가져오지 못했던 시대적 아이러니를 포착했다.
아큐는 당시 사회를 살아가던 중국인의 특징을 꼬집듯이 담아 조형한 인물이다. 그는 무지와 자기기만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독자가 그를 비웃는 순간 곧바로 우리 사회와 개인 안에도 동일한 모습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루쉰은 아큐의 부정적인 면모를 조명함으로써 중국인의 자기 각성을 촉구한 셈이다. 《아큐정전》은 풍자를 통해 스스로의 모순과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자기반성의 거울과도 같은 작품이다.
《아큐정전》은 사회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큰 전환점을 이루었다. 고전적 문체 대신 구어체를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문학 언어를 구축했고, 개인의 삶과 사회 비판을 전면에서 결합해 중국 현대소설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인간의 나약함과 자기기만이라는 주제를 통해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