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813.5-김32ㄱ
구운몽
김만중 지음 ; 이규희 엮음 ; 서숙희 그림
2003|지경사
ISBN : 9791141987930
지치고 허기져서
가누지도 못하는 몸
발길닿는 종점에는
무너지는 은빛 꿈이
화안한
웃음을 머금고
소리없이 울고 있다.
키 없는 가슴팎을
난파하는 저 하늘빛
네 것인가, 내 것인가
무수히 열린 길
한사코
밀리는 언덕바지
회전목마로 남고싶다
- 「스물넷의 봄」 전문
지금까지 스무살 때부터 틈틈이 써 왔던 설익은 작품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해설을 곁들여 보았다. 어른들의 말처럼 시간이 참 잘 갔다. 돌아보면 멀지 않은 시간인데 켜켜이 쌓여서 꽤 두툼한 세월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늘 생각한다. 무엇을 해 왔는가보다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한다. 스물 넷에도 ‘지치고 허기져서 가누지 못하는 몸’이었던 나, ‘키없는 가슴팎을 난파하는 저 하늘’ 아래서 ‘회전목마로 남고 싶어’ 했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앞으로 또 그만큼의 세월이 지났을 때 그때의 나는 또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생각해 본다.
흔들렸네
힘들게 걸어온 그 길에, 한닢 한닢 포개가며 결삭인 그 속에서 여며온 사연들 모아 얼굴 잠깐 내밀었네 「들국화 - 구운몽.14」 2연
가도가도 그 길이라 길 위에서 길을 묻다
알면서 가는 길과 몰라서 가는 길이
실타래 엉킨 것처럼 어지럽게 꼬여 있다 「길 - 구운몽.20」 전문
여전히 내 마음은 꿈길을 걸으면서 늘 흔들리고 있다. 지난 시간들 ‘여며온 사연들 모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어떤 길을 가자는 생각은 있지만 지금 가는 길이 그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실타래 엉킨 것처럼 어지럽게 꼬여 있’지만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떨까 싶다. 잘 산다는 것도 잘 살고 싶다는 것도 따져 무엇하겠는가.
저는 시조가 편하고 좋습니다. 꾸준히 시조로 일상을 기록하고 아이들에게 시조를 읽히고 쓰게 하면서 꾸준히 시조문학과 함께 해 왔습니다.
지금도 시조시는 여전히 특별하게 대접받습니다. 시조시를 쓴다는 건 여전히 시나 소설을 쓴다거나 동화를 쓰는 활동과는 다르게 여겨집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일은 자연스러운 문학활동으로 받아들이지만 시조를 쓰는 일은 작가와 독자 모두가 의무감이나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문학의 계승과 극복이라는 숙명은 많은 작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전통의 틀도 지키고 현대적인 감성과 문학성을 높이는 일도 과제입니다.
서른 즈음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습작한 여러 작품들을 모아서 작품집 출판을 준비했었지만 이렇게 저렇게 미루다가 어느덧 훌쩍 오십이 넘어 버렸네요.
돌아보면 많은 시간들을 마음먹은 만큼 살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후회와 시행착오가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나간 모든 시간들은 추억으로 소중하게 남아 있겠지요. 늘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하루가 더 소중한가도 싶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해 놓아야 다음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으로 첫삽을 뜹니다.
양평에서 정석광